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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금안동(쌍계정)-4

노안면 금안동의 명물은 아무래도 쌍계정이라 말하고 싶다. 일명 사성강학소(四性講學所)로 불리우는 쌍계정의 현판은 한석봉의 필체라 한다. 사성이란 나주 정씨,하동 정씨,풍산 홍씨, 서흥 김씨 를 말함인데 이들 문중에서 쌍계정에 모여 대동계를 운영했다고 한다. 금안동 동계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51점의 소장문서는 鄕約 등, 조선시대 나주목의 역사와 부락의 전통문화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다. 쌍계정의 앞 뒤로 암수 한 그루씩 늙은 푸조나무(물푸레나무,팽나무 등과 구분이 안된다)가 400년도 지난 무상한 세월을 힘차게 버티고 섰다. 신숙주(1417-75) 선생의 생가터에 옛 건물은 흔적도 없고 지금은 집주인도 떠나버린 허접한 폐가만 방치되어 있다. 조선초 왜어,몽골어,여진어 까지 섭렵했던 언어학자이자 훈민정음해례..

산문 2022.03.03

나주 금안동-3

마을 안으로 접어들자 평지인데도 곳곳에 대숲이 바람에 우수수 울었다. 홍 선생(이제 호칭을 바꾸어야 겠다, 시집의 약력란에 한국문인협회 나부지부장이란 직함이 있었다)은 그도 대숲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먼 옛날 인가 외엔 죄 대나무밭이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양반들이 살던 선비촌이었으니,구한말 영산강 앙암바위 구비의 새끼내처럼 노비에서 풀려난 백성들이 농사릏 지을 水畓은 필요가 없었으리라 유추해 본다. 마을 골목이 기와를 얹은 정겨운 토담들 일색이다. 그것을 두고, 홍 선생은 금안동 복원사업의 초대위전장이었던 자신의 작품이라고 한다. 저수지 둔덕이 보이는 마을 안쪽 명당에 자리잡은 영사재(永思齋). 홍 선생의 7대조 재실이란다.영세극효하고 봉선은효라 함을 근본으로 재호를 영사재라, 후손들이 기념석을 세운 것..

산문 2022.03.03

나주 금안동-2

홍각희 해설사가 다음으로 안내한 곳은 금안관 바로 뒷 모퉁이에 자리잡은 그의 서재였다. 약 100여 평의 땅에 콘테이너 박스로 만든 허술한 창고 건물인데 겉과 달리 속은 종합예술가인 금동(錦桐) 홍각희씨의 비단 같은 속살을 품고 있었다. 비로소 나는 그가 하루에 25시간을 사는 진인(眞人)임을 알게 되었다. 나보다 한 살 위 용띠인 그는 사철가나 돈타령을 흥얼거리며 시를 쓰는 풍류객을 뛰어넘어 남자로서 못하는 오락이 없는 현대판 한량이었다. 이제껏 소설가를 꿈꾸며 한 우물만 파고 있는 나를 조롱하듯 그는 이미 열 가지 우물을 판 인간문화재거나 그도 아니라면 기인(奇人) 그 자체였다. 30년 전에 지인으로부터 40만원을 주고 샀다는 거북이 바둑판. 팽나무로 만들었고 바둑알은 조개로 다듬은 것이라 한다. 아..

산문 2022.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