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안으로 접어들자 평지인데도 곳곳에 대숲이 바람에 우수수 울었다. 홍 선생(이제 호칭을 바꾸어야 겠다, 시집의 약력란에 한국문인협회 나부지부장이란 직함이 있었다)은 그도 대숲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먼 옛날 인가 외엔 죄 대나무밭이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양반들이 살던 선비촌이었으니,구한말 영산강 앙암바위 구비의 새끼내처럼 노비에서 풀려난 백성들이 농사릏 지을 水畓은 필요가 없었으리라 유추해 본다. 마을 골목이 기와를 얹은 정겨운 토담들 일색이다. 그것을 두고, 홍 선생은 금안동 복원사업의 초대위전장이었던 자신의 작품이라고 한다. 저수지 둔덕이 보이는 마을 안쪽 명당에 자리잡은 영사재(永思齋). 홍 선생의 7대조 재실이란다.영세극효하고 봉선은효라 함을 근본으로 재호를 영사재라, 후손들이 기념석을 세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