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211

나주 금안동-3

마을 안으로 접어들자 평지인데도 곳곳에 대숲이 바람에 우수수 울었다. 홍 선생(이제 호칭을 바꾸어야 겠다, 시집의 약력란에 한국문인협회 나부지부장이란 직함이 있었다)은 그도 대숲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먼 옛날 인가 외엔 죄 대나무밭이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양반들이 살던 선비촌이었으니,구한말 영산강 앙암바위 구비의 새끼내처럼 노비에서 풀려난 백성들이 농사릏 지을 水畓은 필요가 없었으리라 유추해 본다. 마을 골목이 기와를 얹은 정겨운 토담들 일색이다. 그것을 두고, 홍 선생은 금안동 복원사업의 초대위전장이었던 자신의 작품이라고 한다. 저수지 둔덕이 보이는 마을 안쪽 명당에 자리잡은 영사재(永思齋). 홍 선생의 7대조 재실이란다.영세극효하고 봉선은효라 함을 근본으로 재호를 영사재라, 후손들이 기념석을 세운 것..

산문 2022.03.03

나주 금안동-2

홍각희 해설사가 다음으로 안내한 곳은 금안관 바로 뒷 모퉁이에 자리잡은 그의 서재였다. 약 100여 평의 땅에 콘테이너 박스로 만든 허술한 창고 건물인데 겉과 달리 속은 종합예술가인 금동(錦桐) 홍각희씨의 비단 같은 속살을 품고 있었다. 비로소 나는 그가 하루에 25시간을 사는 진인(眞人)임을 알게 되었다. 나보다 한 살 위 용띠인 그는 사철가나 돈타령을 흥얼거리며 시를 쓰는 풍류객을 뛰어넘어 남자로서 못하는 오락이 없는 현대판 한량이었다. 이제껏 소설가를 꿈꾸며 한 우물만 파고 있는 나를 조롱하듯 그는 이미 열 가지 우물을 판 인간문화재거나 그도 아니라면 기인(奇人) 그 자체였다. 30년 전에 지인으로부터 40만원을 주고 샀다는 거북이 바둑판. 팽나무로 만들었고 바둑알은 조개로 다듬은 것이라 한다. 아..

산문 2022.03.03

조선시대 3대 명촌,금안동-1

(금정산에 동쪽으로 흘러내린 산을 배경으로 앉은 금안동) 전남의 향토문화 해설가인 홍각희씨와 함께 그의 고향이기도 한 금안동을 찾았다. 나주시 노안면 금안리가 조선시대 3대 명촌의 하나였다는 말에 나는 그 영문이 궁금했다. 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은 평범한 시골 마을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동신대학에서 광주로 향하는 직선 대로변이어서 혹시 그 점에 실마리가 있는가 싶었다. 홍씨는 세종때의 집현전 학자 ,신숙주의 생가가 있는 곳이라 해서 점점 궁금증이 더해갔다. 2011년 11월에 63억원의 예산을 책정받아 시작된 금안권역 종합정비사업으로 지어진 금안관. 기념석과 단체탐방객이나 명촌 체험객들을 위해 지은 금안관의 전경이 일순 멋드러져 보였다. 그러나 그 옆의 명촌관과 더불어 무슨 기념관이나 박물관도 ..

산문 2022.03.03

벽류정(碧流亭)

지난 2월 16일,나주시 세지면 벽산 벽류길 102. 노안면 출신 향토사학자 홍각희씨의 안내로 나주에 있는 여러 정자중 제일 아름답다는 벽류정을 찾았다. 나주의 진산 금성산의 발아래 넓게 펼쳐진 세지면 평야에 솟아오른 작은 동산에 세워진 이 정자가 벽류정(碧流停)란 이름을 얻은 것은 영암군 금정면 국사봉에서 발원하여 이 작은 동산을 끼고 돌아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금천(金川)과 유관하다. 이 정자는 세종때 호조참판을 지낸 조주(趙注)가 말년에 별장으로 쓰던 곳인데, 후사가 없어 그의 외손주인 광산 金씨 運海 에게 물려주자, 그가 인조18년(1640)에 외조부의 높은 학문과 인품을 기리기 위해 전후좌우 3칸인 팔작지붕의 이 정자를 짓고 인근의 선비들을 벗삼아 시문을 즐겼다고 한다. 32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

산문 2022.02.16

신안군 임자도

22.1.10 , 등대교회 기둥들이 의기투합하여 무안군 해제로 달려갔다. 겨울 숭어회맛을 보기 위함이었다. 산 낙지 먹고 소처럼 벌떡 일어났다는 나를 기억한 K가 오늘도 한 마리 8천원 한다는 낙지를 5마리 보탰다. 숭어 1키로에 1.8만원을 불렀다. 된장국에 밥 한 그릇을 비우니 배가 터질 듯. 배도 껄겸 년전에 다리가 놓였다는 신안군의 임자도를 찾았다. 지도를 거쳐 수도를 징검다리 삼은 현수교를 타고 임자도로 왔으니 북쪽 대광해수욕장으로 직행했다. 4키로미터 해안선이 광막하여 아연 놀랐다. 완도의 명사십리와 비교한다면,나주 샛골나이(細木布) 같은 沙場은 말이 달려도 패이지 않을 만큼 단단하고 개펄로 딱여진 물길이 얕고 길어, 어린 아이들이 물장구치고 놀기에 안성맞춤이란다. 해수욕장 입구의 우뚝 솟은 ..

산문 2022.01.11

임인년 , 1월의 기도

자비롭고 거룩하신 주님,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저희들을 말씀의 은혜로 살아오게 하셨음을 이 시간 다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주님을 사모하며 정결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 왔습니다. 저희들이 드리는 이 예배와 찬양을 기쁘게 받아 주옵시며, 홀로 영광 받으소서. 살아 계신 주님, 새해에 처음 맞이한 지난 한 주간도, 애통한 마음으로 보냈습니다. 저마다 구하지 못해 얻지 못한다는 예수님 말씀을 기억하며, 코로나 펜데믹에 빠져 서로가 함부로 오갈 수 없는 심란한 시간들과, 상호비방과 위선으로 가득한 이 나라의 대선정국 등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 같은 애통함이나 안타까움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 그저 편안하기만을 바라는 인간의 짧은 생각이었음읊 이 ..

산문 2022.01.09

말무덤.

강진군 작천면에 있는 말무덤, 이름하여 양건당 애마총(兩瀽堂 愛馬塚)을 다녀왔다. 정유재란 때 남원성에서 순절한 의병 황대중(1551-1597) 장군의 시신을 싣고 300리 길을 달려 주인의 고향으로 돌아온 말의 의로운 충정을 기려 그 후손들이 벌판 한 가운데 말무덤을 만들고 500년이 지난 지금껏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 양건당(兩䙭堂)은 이순신 장군이 붙여준 이름이라고 한다. 전쟁 전 어머니를 병구완하려고 자신의 허벅지 살을 도려내 먹인 결과 한쪽 다리를 절어 이를 효건이라 하였고, 전쟁중 왜군의 총탄에 맞아 다른 한쪽 다리마저 절자 이는 충건이라며 양건당이란 당호를 내렸다고 한다. 무덤앞의 석물과 무덤의 유래를 설명하는 기념비는 최근 관광객을 위해 군에서 세운 것이다. 이같은 의마총은 곡성의 옥과와 ..

산문 2022.01.09

어산재의 겨울, 애마부인.

신축년의 세밑(21.12.23). 잘 삭힌 홍어 한판을 둘러메고 소설 몇 권을 챙겨 보성의 어산재를 찾았다. 나의 신작 '아버지의 바다' 출간기념 파티를 발문을 써주신 정형남 선생님과 함께 하기 위함이었다. 내친 김에 작가 후기에 언급한 인근의 아우들(형진,주현)도 청했다. 낮부터 달군 구들장이 펄펄 끓어 선생님은 런닝셔츠 차림으로 신작 증정본을 받는다. 며칠 전 술병으로 위가 뒤틀려 병원을 찾았다는, 샘이 그 좋아하던 막걸리 청주마저 조심조심 샐금거리자, 형진 아우는 중국의 詩聖 두보가 즐겨마셨다는 고량주를 뚜벅 내게 디밀었다. 마당 뜰에서 사랑채 땔감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주현 아우가 빠져 분위기가 방바닥처럼 쉬 달아오르지 않는다. 노느니 염불한다고,내가 대선정국에 대해 슬며시 여론조사를 했다. "에이..

산문 2022.01.06

규목산방(槻木山房)

지난해 8월말에 완공된 나의 누옥(陋屋)에 이름을 짓고 문패를 단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집 뒤로 우거진 물푸레나무는 500년이 지난 시 지정 보호수다. 지난 가을, 2층 발코니에,매일 무수한 낙엽을 쏟아부어 나를 곤혹스럽게 했지만,낙엽을 쓸고 치우는 노동의 즐거움도 그에 못지 않았다. 집터를 이곳에 구한 것이 바로 저 느티나무 때문이었기에,낙엽을 머리에 둘러쓰는 일은 어쩌면 당연했다. 옥호를 처음엔 '느티나무집'이라 지으려고 했지만,왠지 부산 등지에서 자주 찾았던 보신탕집이 연상되어 語山齎 정형남 선생님의 친필로 하사받은 '규목산방'으로 정했다. 집 뒤가 야트막한 산이고 농부가 아닌 백수 글쟁이니, 山房이란 말도 느티나무를 일컫는 槻木과 잘 어울린다 싶었다. 문패를 달고 나니 왠지 어깨가 무거웠다. 문..

산문 2022.01.05

새집에 온 손녀들

21.12. 18(토) 개최되는 장로임직식을 축하하기 위해, 울산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는 큰 아들 식구들이 밤길 눈보라를 헤치고 달려왔다. 길이 미끄러워 엉금엉금 기어서 자정이 다 되어서야 나주 다시면 신석리의 올해 새로 지은 나의 누옥에 당도했다. 눈물겹도록 보고싶었던 내 손녀들, 멀리 강너머 죽산교를 등지고, 2층 발코니에서 사진을 남겼다. 교회 일을 하느라 주말 여행이 어렵고, 또 길이 멀어 일년에 겨우 한 번 만날까 말까 하는 귀한 손님인지라 늘 그립고 안타까운 내 핏줄들이다.

산문 2022.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