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211

나주 배

노안면에 자리한 시니어 클럽 마당을 걷자하니, 이웃한 경계에 배밭이 있다. 어제 새벽 4시 30분 경 새벽기도를 하러 집을 나서는데 웬 아주머니 한 분이 아파트 입구를 바삐 나섰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옷은 어디 일하러 가는 모양새다. 아내가 물으니, 대뜸 배 싸러 간다고 했다. 아- 그래서 배 농장을 하는 李 장로님이 요 며칠 새벽기도를 걸르셨구나. 지난 4월 하얀 배꽃이 피었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작은 열매가 달렸으니 종이로 배를 싸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리라. 봉지 하나에 몇 백원, 손이 빠른 여인은 하루 15만원을 번다고 했다. 배 싸는 일은 새벽부터 점심나절까지란다. 가지의 높은 곳엔 손이 닿지 않아 옷을 못입은 열매들이 울상인 채 달려 있다. 그러므로 나주 천지 흐드러진 배밭들, 가지치기 작업도 ..

산문 2021.05.30

최부(崔溥)선생의 묘, 그 뒷 이야기

내 블로그의 금남 최부의 묘란 글을 읽고 ,광주에 계시는 이한규 선생(들꽃 도사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최부 선생에 관한 영상을 제작하려고 하니, 5월 26일 최부선생의 묘에 함께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영상녹화를 위해 올해 82세 청년 윤병훼 선생님이 직접 차를 운전해 이 선생과 함께 오셨다. 윤 선생님은 디지털 편집기사 1급 자격증을 지니신 분이었다. 퇴직 후 노년을 아름다운 일을 위해 투자하는 그들이 부러워 나는 참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최부의 묘는 처가인 해남에서, 그의 부친인 진사(進士) 택(擇)의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묘터로 이장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부친의 묘터는 중국에서 국위를 선양한 최부의 공을 가상히 여긴 성종이 나라의 풍수가를 보내 정한 명당이다. 성지파(聖智派)..

산문 2021.05.29

나주향교(2)

공자를 위시하여 27인의 위패를 모셨다는 대성전이다. 1년에 두번 제를 올렸다고 한다. 이곳 대성전의 모양이나 크기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 중의 으뜸이라고 한다. 대성전 뒤 편이 학생들의 공간이었다. 위가 내삼문(內三門) 아래가 외삼문이다. 향교의 정문인 셈인데 문앞에서는 누구나 말에서 내려 공손한 자세로 예의를 먼저 갖추고, 사람은 동입서출(東入西出) 즉 동쪽 문으로 들어와 서쪽 문으로 나간다고 한다. 중앙문은 사람의 출입로가 아니라니 제를 올릴 때 준비한 제물들이 드나들었나 보다(?). 아무튼 나주가 자랑하는 보물인데 널리 알리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노력이 미흡하다는 생각이 짙다. 전주한옥마을처럼 이곳도 전통마을로 꾸미려는 역사(力事)가 진행중인데 과연 어떤 모습으로 거듭날지 두고볼 일이다.

산문 2021.05.27

나주 향교(1)

600년 이상 이어져온 나주 향교의 학교 마당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이 향교는 조선시대에 건립된 지방의 중등교육 기관이었다. 선생들은 성균관 출신으로 과거에 급제한 종 6품의 관리였단다. 시니어들을 위한 문화사업 프로그램에 초대된 덕분이었다. 학생과 선생들이 머물렀던 기숙사의 뒤뜰을 둘러보는 길이다. 우측에 나란히 선 것들은 방 온돌을 데우고 나온 뜨거운 연기가 빠져나가는 굴뚝이다. 은행나무나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심었다는 비자나무는 너무 고령이라 보호수란 명패가 붙었다.

산문 2021.05.27

갓꽃

4월 중순. 다시면 신석리에 있는 집터를 찾았다. 마당에 갓배추가 여기저기 돋아나더니 어느새 유채꽃으로 만발했다. 곧 집을 지을 자리다. 집이 앉을 자리는 느티나무 저 아래지만 빈 터에 제절로 돋아난 저 식물을 베어내는 일이 맘에 내키지 않는다. 봄에는 유채꽃 가을에는 코스모스 꽃밭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생각중이다. 장차 규목산방(槻木山房)이란 옥호를 달 나의 초옥에 어울리는 정원의 밑그림을 구상하는 일도 최근에 생긴 나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산문 2021.04.23

금남(錦南) 최부(崔溥)의 묘

전남 나주시 동강면의 느러지 마을이다. 영산강의 곡강이 한반도 지형을 만든 영산강 8경중 2경으로 영산강의 숨결이 가장 도드라진 풍경이다. 저 느러지에 있는 최부의 묘(무안군 몽탄면 이산리)를 찾아가기 위해 지나가는 길이었다. 수국이 만발하는 5월에 느러지 전망대를 찾아보기로 하고 아쉬움을 달랬다. 1454년 동강면 인동리(전남 나주 곡강면 성지촌)에서 태어나 성종 19년(1489년)에 저 유명한 표해록(漂解錄)을 남긴 최부는 , 정약용 다음으로 내가 존경하는 조선선비의 표상이다. 표해록에 남긴 그의 주옥같은 문장과 언행에서 지행합일의 기개와 선비정신에 압도된 나머지 나는 그를 평생 정신적 스승으로 떠받들기로 맹세했다. 그래서 올해 구정 (2021.02.12) 아침 한복을 입고 스승을 만나러 이곳에 온 ..

산문 2021.04.23

1월의 건배

동아대 기계공학 교수 퇴임후 세종시로 이사가셨던 주원식(77세) 형님이, 1월 27일, 불현듯 나주를 찾으셨다. 부산의 사하초등학교 100년사 발간(2008년)을 위해 함께했던 선후배간의 진한 추억이 은연중 발동한 것이리라. 혼자 자전거를 끌고 제주도를 비롯 전국 각지를 순례하는 진정한 자유인인 그가, 이 날 열차를 탄 것은 순전히 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주몽촬영지인 영상테마파크의 규모가 전국에서 으뜸이라며 , 다시면의 느티나무 그늘에 자리한 내 집터를 보더니 동네에서 제일 좋은 명당이라며, 형님은 엄지를 치켜세우신다. 1박 2일의 짧은 시간, 나주읍성의 속살과 인근의 명소를 둘러보시고, 이튿날 내가 대접한 나주곰탕을 드신 후 형님은 열차에 오르셨다. '니,집 다 지으면 다시 오-께.' 그 순간, 형님..

산문 2021.02.03

1월의 기도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 한 주간도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여 코로나 역병을 비롯한 세상일에 얽매여 고뇌하고 번민했던 저희들의 어리석음을 이 시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40년 광야의 시대, 주여 언제까지옵니까? 라며 믿지 아니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을 오늘 다시 기억합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하나님의 시간 안에 이 질병도 머지않아 소멸되고 우리의 믿음생활 또한 기쁨가운데 소망을 품는 창조적인 삶을 다시 누리게 될 것임을 굳게 믿습니다. 사랑의 주님, 새해에는 우리 스스로 새 소망과 사랑으로 먼저 무장되어야 하겠습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을 스스로 축복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새해에는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을 스스로..

산문 2021.01.25

겨울 별미(외포리 대구회)

남해-삼천포-통영-거제로 다닌 겨울여행의 종착지다. 게제시 장목면 외포리 수산시장이다. 이곳에서 출생한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거제도는 척박한 땅이었다. 거제 구조라 출신인 내가 외포리에 발을 내디딘 것은 60 평생 처음이다. 친.외가가 모두 일운면,남부면이기도 했고 방학때나 들리는 고향에서 먼지 나는 찻길로 연고없는 타지여행이란 언감생심이었기 때문이다. 외포리 앞바다는 통영으로 이어지는 거제대교 인근의 거제해협으로 명량처럼 물살이 세고 차다. 오래전부터 대구가 산란을 위해 회유하는 고장이었다. 배를 따 걸어둔 대구의 몸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산란철이 조금 이른 상싶다. 수온이 불규칙하여 대구의 자연산 회유가 뜸해지면 성어 한 마리 경매가가 30만원을 홋가하던 대구였다. 수년 전부터 새끼들을 ..

산문 2021.01.16

여수 밤바다

진도를 떠나 여수에 도착하니 어느덧 어둠이 짙게 깔렸다. 찾아간 곳은 중앙동 낭만포차거리. 해안가를 일렬로 메웠던 밤바다 포장삭당들은 죄 사라지고 유명했던 '여수 밤바다' 노래는 이제 소주병 이름으로 남았다. 낭만포차 9호로 이름붙인 식당으로 들어가 거문도 은갈치회를 주문한다. 남해에서도 거문도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갈치회를 여수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여행가이자 미식기행가인 車 교장 덕분이었다. 그런 그가 자칭 해양소설가인 나를 순간 부끄럽게 만들었다. "낚시로 잡으면 은갈치,그물로 잡으면 먹갈치라 부르지 종種은 같습니다." 목포에서 많이 올라오는 먹갈치는 피부가 원래 검어서 그리 부르는가 싶었는데 그물에 비늘이 부대껴 그렇다는 것이다. 주인이 직접 배를 몰고 거문도 인근에서 잡아온 은갈치라 그런지 맛..

산문 2021.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