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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결혼축사, 그 후.

서울에 사는 둘째 아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사연인즉 김포시에 있는 새 아파트를 구해 오늘 매매계약을 하러 가게 되었다는 말이다. 집값의 7할이 은행빚이라고 한다. 아들은 81년 생, 한국 나이로 마흔이고 지난 해 3월 띠동갑 어린 신부를 얻은 기혼남이다. 비록 빚을 업고 샀다고 해도, 아들이 스스로 새 집을 장만한 것은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20여 년 전 IMF사태로 쓰러진 뒤로 여태껏 경제적으로 능력이 없는 아비였다. 아들의 결혼식때 아비로서 한 일이라곤 손수 쓴 아들결혼축사를 읽어준 것이 고작이었다. 아들이 회사 근처 15평 남짓한 독신자용 아파트에서 신혼을 꾸밀 때에도 측은지심에 마음이 아파, 어서 빨리 손자를 낳아 품에 안겨 달라는 얘기는 아예 입 밖에도 꺼내지 못했던 ..

산문 2020.07.24

신독(愼獨)

신독(愼獨)과 행불괴영(行不愧影) - 박원순 시장(1955.2.11.-2020.7.9.)의 자살소식을 접하고. 10일 오전 0시 경 서울 북악산 야산(숙정문과 삼청각 사이 성곽길)에서 그는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실종신고후 7시간 만이다. 경찰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음독인지 투신자살인지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채, 부검도 없이 사체를 유족에게 인계했다고 한다. 사인에 대한 사실 확인에 굶주린 기자들에게 경찰은 고인과 유족의 명예를 위해 구체적으로 답할 수 없다며 말을 삼갔다. 나는 고인과 유족의 명예란 말에 불쑥 화가 치밀었다. 박 시장의 실종신고 속보와 함께( 9일 오후 5시 무렵) , 전직 여비서가 박 시장을 상대로 성추행 고발장을 내고(8일 오후) 당일로 고소인 조사를 밤늦도..

산문 2020.07.11

무료한 날의 생각들

1. 가끔, 무료한 시간이면 어디서건 믹스커피를 타 마신다. 믹스커피 스틱을 열어 물 컵에 털어 넣고 데워진 물을 부은 뒤 찢어진 스틱 주둥이를 밑으로 넣어 커피를 섞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누군가 그런 나를 보고 그러지 말고 스틱을 거꾸로 해서 저어라 했다. 이윤즉, 스틱 속에 납 같은 유해성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나와 같은 당뇨병을 앓는 사람이다. 나와 달리 그는 중국산 차를 마시거나 원두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이다. 교회목사인 그가 최근 조울증이 도져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제각각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을 신념처럼 고집하지만, 정작 자신의 영혼을 다스리는 일에는 먼 바다에서 표류하는 배처럼 그저 막연하고 속수무책이다. 나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2. 배우 신성일( 본명 강신영. 1937..

산문 2020.06.26

6월의 기도

존귀하신 하나님 아버지,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라. 다윗의 시편 말씀을 상고하며, 지난 한 주간의 삶을 이 시간 되돌아 봅니다. 뉴스를 통해 쏟아지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소식에 끊임없이 낙담하였고, 세상 사람들의 갖가지 불의한 일에 분노하고 절망했으며, 삶의 터전에서도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되어지지 않음을 불평하며 마음 아파했습니다. 이 모든 것, 사랑이신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난 자의 죄였음을 고백합니다. 주여,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참 생명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삶이 언제나 기쁨으로 충만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산문 2020.06.14

요즘세상(20. 05.27)

윤미향과 이해찬 민주당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정의연의 대표 윤미향과 그녀를 고발한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요즘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TV를 끄고 싶어도 안타까워 이 말 저 말 다 듣고 만다. 사건의 본질을 요약하면, 일제시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피해를 보상하려고 출발한 시민사회단체(정대협,정의연)가 세월이 흐를수록 피해자중심이 아닌 단체중심의 사업으로 활동영역을 넓혀가면서 저지른 회계부정(국가지원금및 기부금 누락)이나 피해자인 할머니들을 앵벌이 수준으로 전락시키면서 야기된 갈등이다. 나는 이 사태에 대해 판관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윤미향이 소속된 민주당의 반응에 대해 한 마디 하고자 한다. 문민정부가 출범한 지 30년이 지났건만 정치판에는 여야 가리지 않고 아직도 정신 빠진 자들이 ..

산문 2020.05.27

하몽(Jamon)을 찾아서-3

하몽 접시가 일착으로 나왔다. 작은 종기에 담긴 것은 올리브 열매다. 엷게 썰인 것이 마치 붉게 물들인 대패밥같다. 포도주를 한 모금 삼킨 후 하몽 살점을 입으로 가져간다. 혀끝에 감도는 그 맛이 과연 일품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저녁 식전에 먹는다는 포도주 안주답게 생김새처럼 맛도 경쾌하다. 짜지않고 심심하면서 간간하다. 그래서 포도주와의 궁합이 가히 환상적이다. 포도주가 싫다며 수제 생맥주를 택한 K군이 예술감각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내가 상상했던 훈제건조품의 맛과는 사뭇 다르다. 도토리만 먹인 흑돼지란 말을 들은 K군이 살점에서 도토리 냄새가 난다고는 했지만 후각이 둔한 나는 글쎄였다. 접시가 비어가는 동안 나는 15세기의 대항해 시대를 떠올렸다. 말린 염장돼지고기를 실은 캐리컷 범..

사진앨범 2020.05.13

하몽(Jamon)을 찾아서-2

30여 년 전 일이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비뇨(와인)과 함께 훈제 하몽을 먹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어 하몽전문 카페식 체인사업을 연구한 적이 있었다. 첫번 째 문제가 훈제용 나무였다. 설사 훈제품 고기를 수입해서 쓴다 해도 컨테이너선 운송은 ,실험단계에선 경제성이 없어 포기했었다. 그런데 이곳의 하몽은 스페인이나 아르헨티나에서 맛본 훈제품이 아니었다. 도토리를 먹인 흑돼지를 천일염으로 3개월 염장한 뒤 동굴에서 3년간 건조시킨 것인데, 스페인 대사관 직원들이 방문했다가 엄지를 치켜세웠다는 일등품이라고 자랑한다. 이걸 어떻게 구입해 오느냐니깐 뒷다리를 싸담는 포장백과 브랜드 보증서가 붙은 노끈을 보여주며 소포장 단위로 파는 수입업체가 따로 있다고 한다. 포도주가 싫은 K는 수제 생맥주를 시키고, 나는..

사진앨범 2020.05.13

하몽(Jamon)을 찾아서-1

이빨 치료를 위해 1주일 단위로 서울을 방문하는 일이 몇 달째 이어져 오고 있다. 5년 전부터 직장 일로 알게 된 K(일수)군이 언젠가 서울에도 하몽(Jamon: 염장 건조 돼지고기 )을 맛볼 수 있는 가게가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 K군과 사전 약속을 잡았다. 5월 11일,치과에선 충치가 생긴 사랑니를 빼려고 했으나 다음으로 미루고 오후 6시 경 홍대입구역에서 그를 만났다. 월요일엔 가게를 쉰다는 사장이, K가 특별손님이라 허풍을 떠는 바람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젊은 대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포차수준인가 싶었는데 사장이자 요리사인 주인의 국제적 안목을 마주하자 바짝 긴장이 되고 오줌이 마렸다.

사진앨범 2020.05.13

시골 집 마당

위는 마당 밖 담모퉁이에 선 떫은 감나무,아래는 집 마당에서 자라는 단감나무다. 차이는 당연히 가을에 열릴 열매로 알겠지만,나무 잎사귀의 질감이 우선 달랐다. 단감나무는 엷은 녹색으로 부드럽고 문밖의 떫은 나뭇잎은 진초록으로 여물다. 좋고 싫음,선과 악. 유(柔)와 강(强). 그 차이의 미세함이 사람에게도 닿아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마당 앞 담벼락을 따라 할머니가 꽃밭을 꾸몄다. 연산홍과 진달레 참꽃, 검붉은 목단화...안쪽으로 수국 등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뽐낸다. 아무리 못나도 꽃은 꽃이다. 남편과 동행한 여자들도 오늘은 저마다 아름다운 꽃이다. 이 꽃과 나무들이 없었다면 얼마나 심심하고 무료한 시골 정경이었을까? 6.25 상이군인인 남편을 모시고, 집 앞 다섯 마지기 논농사로 다섯남매를 반듯..

산문 2020.05.06

녹차밭 체험

보성군 노동면 광곡리 탄곡마을. 찾아가는 길이 첩첩산중이다. 팔십 넘은 모친만 홀로 지키는 고향이라 농사짓지 말라고 아들은 녹차밭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린이 날을 기해 우전 잎을 따게 해 주겠다며 고향의 녹차밭으로 이끈 이는 환갑이 지난 교회 담임목사님이시다. 아버지가 물려준 낮으막한 야산의 땅을 녹차밭으로 꾸몄으니 그는 어엿한 농업경영인이다. 나이 드신 모친은 국가보훈연금으로 자립생활을 하고, 그는 농업경영 지원금을 국가로부터 받는다지만,보아하니 농사는 흉내만 낼 뿐이다. 녹차밭을 에워싼 대나무 숲이 그래서 마차 위장막처럼 보인다. 죽순이 솟아나기엔 아직 때가 이르다. 아내는 새순이 오른 찻잎을 따고, 나는 낫을 들고 차나무에 섞인 잡목을 제거하느라 열심히 땀을 쏟았다. 어쨋거나 젊은 이장을 빼곤 온통..

산문 2020.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