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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일기- 첫날

8월 27일, 게릴라성 소나기가 퍼붓던 날 시골 마을로 이사를 왔다. 나주시 다시면 신석리에 새집을 지은 터였다. 다음날 이른 아침 마을을 누비며 산책길에 나섰다. 온통 녹색의 물결에 몸과 마음이 싱그럽다. 문득 마주친 울타리에서 줄지어 선 하얀 무궁화가 눈을 사로잡았다. 이삭이 돋아난 벼논이 저 지평선 끝 강가에 이르도록 들을 이룬다. 마소가 이끄는 논두렁 길은 아니지만 이 한적한 길을 따라 영산강의 둔치까지 걷고 싶다. 이 아침, 녹색의 맑은 공기를 마시면 보약이 따로 필요없겠다.

산문 2021.08.30

나주 전통가옥

전라남도 문화재 158호로 지정된 나주시 송월동 소재 최석기(崔奭基) 가옥이다. 구한말 참봉을 지낸 최승환이 1905년에 지었다는 전통가옥이다. 전면 7칸의 정동향 팔작지붕인 안채를 비롯 사랑채와 중문 왼쪽의 문간채로 구성된 나주 상류층의 전형적인 가옥으로 지금껏 보존되고 있다. 이 전통가옥이 최근 다른 사람에게 팔려 문간채에서 20여 년을 살던 부부가 갑자기 집을 비우게 되었단다. 그 부부가 오래된 골동품이 몇 점 있으니,버리느니 맘에 들면 주워가라고 해서 그가 사는 집을 찾았다. 새 주인이 이 문화재를 장차 어떻게 꾸밀지는 알 수 없으나, 재산이라고 집을 판 후손이나 문간채의 장독같은 세간들이나 내 눈에는 죄 버려야할 것들이었다.

산문 2021.08.07

씨알농원-2

풍류담 모임 회장 김칠선님은 당분간 독재를 하시겠단다. 회장으로 애초 검증도 안 된 터에 자칫 시비를 걸었다간 날아가던 새가 내 얼굴에 똥을 쌀 것이다. 옆에 앉은 이가 송수권 시문학상을 수상한 농부 송만철 시인이다. 노래가 시보다 더 구성지고 끝이 없다는데 오늘 같이 밤을 샐지 의문이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궤적을 '물결'이라 풀었다. 목포의 최기종 시인은 이날 '목포,에말이요'란 시집을 건넸다. 에말이요란 내 말 좀 들어보라는 말이란다. 본을 물으니 탐진 최씨라 해서 '표해록'을 남긴 최부 선생을 나랑 합창하며 술잔을 부딪혔다. 평소 말수가 적은 시인이라 생각했는데 오늘은 노래까지 들고 좌중을 휘저었다. 시집을 내는 것이 며느리가 아이 낳는 일보다 기쁘나 보다. 오후 3시 무렵에 시작된 회식이..

산문 2021.07.05

씨알농원-1

지난 6월 12일. 보성군 노동면 소재 '씨알농원'에 풍류당이 모였다. 코로나 19의 횡포로 1년 넘게 공식 모임을 자제한 끝에 공기 맑은 산속으로 우리를 부른 것은 두 시인의 시집출판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4만 여 평의 야산을 수목원과 차밭 등으로 가꾼 농원의 주인은 40년 이상 이곳 노동면에서 농사일에 투신해온 농민운동가 최영추 (70세)씨였다. 나이를 따져보니 그가 형님이었다. 그의 일생이 내겐 형님 그 자체였다. 수목원을 이루는 1,000 여 그루의 樹種 중 절반 이상이 바람에 날려온 야생종이란다. 산수국의 소박하면서도 청초한 잎사귀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 옆에선 산목련도 여태 하얀 잎사귀들을 품고 있었다. 곧 완성될 다시면의 내 집터에 이 목련과 수국을 한 그루씩 옮겨 심어야겠다고 속으로 욕심..

산문 2021.07.05

나주 배

노안면에 자리한 시니어 클럽 마당을 걷자하니, 이웃한 경계에 배밭이 있다. 어제 새벽 4시 30분 경 새벽기도를 하러 집을 나서는데 웬 아주머니 한 분이 아파트 입구를 바삐 나섰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옷은 어디 일하러 가는 모양새다. 아내가 물으니, 대뜸 배 싸러 간다고 했다. 아- 그래서 배 농장을 하는 李 장로님이 요 며칠 새벽기도를 걸르셨구나. 지난 4월 하얀 배꽃이 피었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작은 열매가 달렸으니 종이로 배를 싸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리라. 봉지 하나에 몇 백원, 손이 빠른 여인은 하루 15만원을 번다고 했다. 배 싸는 일은 새벽부터 점심나절까지란다. 가지의 높은 곳엔 손이 닿지 않아 옷을 못입은 열매들이 울상인 채 달려 있다. 그러므로 나주 천지 흐드러진 배밭들, 가지치기 작업도 ..

산문 2021.05.30

최부(崔溥)선생의 묘, 그 뒷 이야기

내 블로그의 금남 최부의 묘란 글을 읽고 ,광주에 계시는 이한규 선생(들꽃 도사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최부 선생에 관한 영상을 제작하려고 하니, 5월 26일 최부선생의 묘에 함께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영상녹화를 위해 올해 82세 청년 윤병훼 선생님이 직접 차를 운전해 이 선생과 함께 오셨다. 윤 선생님은 디지털 편집기사 1급 자격증을 지니신 분이었다. 퇴직 후 노년을 아름다운 일을 위해 투자하는 그들이 부러워 나는 참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최부의 묘는 처가인 해남에서, 그의 부친인 진사(進士) 택(擇)의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묘터로 이장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부친의 묘터는 중국에서 국위를 선양한 최부의 공을 가상히 여긴 성종이 나라의 풍수가를 보내 정한 명당이다. 성지파(聖智派)..

산문 2021.05.29

나주향교(2)

공자를 위시하여 27인의 위패를 모셨다는 대성전이다. 1년에 두번 제를 올렸다고 한다. 이곳 대성전의 모양이나 크기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 중의 으뜸이라고 한다. 대성전 뒤 편이 학생들의 공간이었다. 위가 내삼문(內三門) 아래가 외삼문이다. 향교의 정문인 셈인데 문앞에서는 누구나 말에서 내려 공손한 자세로 예의를 먼저 갖추고, 사람은 동입서출(東入西出) 즉 동쪽 문으로 들어와 서쪽 문으로 나간다고 한다. 중앙문은 사람의 출입로가 아니라니 제를 올릴 때 준비한 제물들이 드나들었나 보다(?). 아무튼 나주가 자랑하는 보물인데 널리 알리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노력이 미흡하다는 생각이 짙다. 전주한옥마을처럼 이곳도 전통마을로 꾸미려는 역사(力事)가 진행중인데 과연 어떤 모습으로 거듭날지 두고볼 일이다.

산문 2021.05.27

나주 향교(1)

600년 이상 이어져온 나주 향교의 학교 마당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이 향교는 조선시대에 건립된 지방의 중등교육 기관이었다. 선생들은 성균관 출신으로 과거에 급제한 종 6품의 관리였단다. 시니어들을 위한 문화사업 프로그램에 초대된 덕분이었다. 학생과 선생들이 머물렀던 기숙사의 뒤뜰을 둘러보는 길이다. 우측에 나란히 선 것들은 방 온돌을 데우고 나온 뜨거운 연기가 빠져나가는 굴뚝이다. 은행나무나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심었다는 비자나무는 너무 고령이라 보호수란 명패가 붙었다.

산문 2021.05.27

갓꽃

4월 중순. 다시면 신석리에 있는 집터를 찾았다. 마당에 갓배추가 여기저기 돋아나더니 어느새 유채꽃으로 만발했다. 곧 집을 지을 자리다. 집이 앉을 자리는 느티나무 저 아래지만 빈 터에 제절로 돋아난 저 식물을 베어내는 일이 맘에 내키지 않는다. 봄에는 유채꽃 가을에는 코스모스 꽃밭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생각중이다. 장차 규목산방(槻木山房)이란 옥호를 달 나의 초옥에 어울리는 정원의 밑그림을 구상하는 일도 최근에 생긴 나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산문 2021.04.23

금남(錦南) 최부(崔溥)의 묘

전남 나주시 동강면의 느러지 마을이다. 영산강의 곡강이 한반도 지형을 만든 영산강 8경중 2경으로 영산강의 숨결이 가장 도드라진 풍경이다. 저 느러지에 있는 최부의 묘(무안군 몽탄면 이산리)를 찾아가기 위해 지나가는 길이었다. 수국이 만발하는 5월에 느러지 전망대를 찾아보기로 하고 아쉬움을 달랬다. 1454년 동강면 인동리(전남 나주 곡강면 성지촌)에서 태어나 성종 19년(1489년)에 저 유명한 표해록(漂解錄)을 남긴 최부는 , 정약용 다음으로 내가 존경하는 조선선비의 표상이다. 표해록에 남긴 그의 주옥같은 문장과 언행에서 지행합일의 기개와 선비정신에 압도된 나머지 나는 그를 평생 정신적 스승으로 떠받들기로 맹세했다. 그래서 올해 구정 (2021.02.12) 아침 한복을 입고 스승을 만나러 이곳에 온 ..

산문 2021.04.23